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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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35-36] 원수 사랑의 또 다른 의미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4. 12. 29. 10:48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누가복음 6:35-36 '원수 사랑'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최고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어떤 기독교인도 '원수 사랑'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닿을 수 없는 것은 알면서도 추구하는 이상향처럼 벽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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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21]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0. 4. 18. 22:12
길고 긴 이야기를 지나서 누가는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누가의 이 기록에는 역사상에 오류가 있습니다. 분명 앞에 이야기에서 누가는 엘리사벳의 임신을 유대왕 헤롯때라고 적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왕 헤롯이 기원전 4년경에 죽기 때문에 신학자들은 보통 예수님의 탄생시기를 기원전 4년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퀴리니우스(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호적등록을 한 시기는 기원후 6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대로라면 예수님은 기원전 4년 이전이나 기원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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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9~80] 마리아 찬가, 사가랴의 노래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0. 4. 15. 01:05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임신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유대의 산골동네로 찾아갑니다. 특이한 것은 이 본문의 구조가 다른 이야기를 완전히 생략하고 엘리사벳의 환영의 외침과 마리아 찬가 두가지만을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구조만을 놓고 본다면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 서로 노래 한곡씩을 부르고 돌아온 형태가 되어버립니다. 약간 어이없어 보이는 이 구절이 왜 등장하는 것일까요?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누가복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세례요한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된 유일한 복음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례요한 자신에 대한 기록은 축소되거나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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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38] 비천한 여종의 믿음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0. 4. 6. 20:43
이 단락에는 두가지 수태고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이 요한을 갖게 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가 잉태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대조적인 구조를 가지고 연속하여 등장합니다. 특히나 세례요한의 탄생이야기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배열은 누가의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조에 배속된 제사장으로서, 사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인데, 이름은 엘리사벳이다. 이 구절을 처음 읽는 사람은 전형적인 한 사람의 탄생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제사장 아버지에 아론의 자손인 어머니를 둔 한 사람의 탄생,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모른채 읽어나간다고 할 때 이런 가정사적인 배경은 메시야 탄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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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4] 누가가 쓰는 복음 이야기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0. 1. 23. 10:36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쓰여진 글입니다. 데오빌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료는 없습니다. 혹자는 가상의 인물이라고도 말하지요. 일단 누가의 말들을 통해서 우리가 데오빌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각하'라고 불려질만큼 꽤 고위층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가복음은 부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복음은 부유한 자들에게 쓰는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글을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썼다고 말합니다. 아마 데오빌로는 그 전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접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복음서라는 신화(이야기)를 통해 그가 접한 것이 단순히 이론이 아닌..